목양실에서

월광

작성자
담임목사
작성일
2018-01-19 07:09
조회
2809
커피 향이 진합니다.
체온과 같이 따뜻합니다.
선율이 흐릅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입니다.

월광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곁들여져야 제 맛입니다.
더군다나 오늘과 같은 추운 겨울, 우울한 날에는 제격입니다.

임동혁이 연주를 합니다.
월광은 임동혁이 압권입니다.
내면이 흐르는 표정에
음악이 흐르기 전부터 월광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과 같은 그의 얼굴,
1악장이 흐릅니다.

달빛이 쏟아지는 것을 그렸기에
휘어영- 밝은 달이 나와야 하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과 같은
그의 표정 때문에 슬프기만 합니다.

바로 전에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들었습니다.
많은 작곡가가 비창을 작곡했지만
차이코프스키의 것이 가장 비창다웠습니다.
슬펐습니다.
뭐가 이렇게 슬픈지
슬프도록 슬펐습니다.

비창에 못지않게 월광도 슬펐습니다.
그의 표정도 슬펐고
선율도 슬펐고
우울한 겨울 날씨도 슬펐습니다.

2악장으로 넘어갑니다.
경쾌해집니다.
임동혁의 표정도 바뀝니다.
울 듯한 표정이 풀어집니다.
3악장을 연주할 때는 표정도 격렬해집니다.
격렬할 정도가 아니가 치열해집니다.
마치 소를 몰듯이 치열한 표정입니다.
그러나 그 치열함도 이내 지나고
다시 울 듯한 표정으로 돌아옵니다.

땀을 흘립니다.
관객 누구도 땀을 흘리지 않건만
임동혁은 땀을 흘립니다.
구슬땀입니다.
구슬땀은 방울져서 그의 손등에, 건반 위에 떨어집니다.
떨어지는 땀방울은 선율과 함께 부서집니다.
땀방울과 함께 음악은 마지막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끝날 듯, 끝날 듯하다가
3개의 음표로 끝을 맺습니다.

아하, 이런 것이구나!
막혔던 무엇인가가 터져버린 듯,
금방 없어져버리는 신기루와 같은 찰나의 깨달음!
그것이 무엇일까?
금방 깨달은 그것은 무엇일까?

한숨,
죽였던 숨을 몰아쉽니다.
이미 커피 잔은 비워져 있었고
앞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놓여있습니다.

내친 김에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도 듣고 싶었지만
내일을 위하여 남겨놓았습니다.
8개의 음을 가지고
몇 번의 변주를 통해서 한 시간을 끌고 가는 그의 집중력!
운명스러워서 좋아합니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행복한 시간이 내일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일과로 돌아가는 손길도 가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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