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실에서

꿈결처럼

작성자
담임목사
작성일
2019-06-21 17:07
조회
180
애틀랜타 공항.
지헌이는 아빠, 엄마를 따라 LA로 돌아가려 합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부스스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 거립니다.
지헌이를 잠시 안고
"지헌아, 평안히 가!"
볼에다 입을 맞추니
그때야 헤어지는 줄 알고 울 듯한 표정이 됩니다.

2살이 안 된 아이도 이별의 아픔을 아는지
안타까운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지헌이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지헌이가 눈에 밟혔고
지난 며칠이 꿈과 같았습니다.

5일 전에 지헌이를 만났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일주일에 몇 번씩 화상통화를 해서 그런지
지헌이는 낯설어하지 않았고
금방 와서 안겼습니다.
할아버지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할레디, 할레디" 합니다.

이때서부터 시작하여 돌아가는 지금까지
지헌이는 내 품에 안겨 있었고
발이 땅에 닿을 틈이 없었습니다.
손자를 품에 안는다는 것,
아니, 손자가 할아버지 품에 안긴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그림입니다.

지헌이는 물을 좋아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내 방 앞에 있는 지헌이를 안았습니다.
지헌이는 내 품에 안겨 밖을 가르칩니다.
"물- 무-울"
시온폭포를 가르쳤던 것입니다.
날아갈 듯이 지헌이를 안고 폭포 앞으로 갔습니다.

폭포 앞에서 떨어지는 물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
천둥벼락이 쳐도 꼼짝 안 할 무서운 집중력으로
물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레고를 좋아합니다.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레고 속에 묻혀 있습니다.

천장에서 돌고 있는 선풍기를 신기해합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스위치를 올리면 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위치 앞으로 가자고 방향을 돌리고
스위치를 올립니다.
스위치를 올리기가 무섭게 선풍기를 쳐다봅니다.
선풍기가 돌아가면
지헌이도 손을 돌리면서 윙윙윙 노래를 부릅니다.
신기하기도 해라, 이런 것도 할 줄 알다니!

계단 오르기를 좋아합니다.
안겨 있다가 계단만 보면 올라가려고 합니다.
계단 앞에 서면 손을 내밉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까닭입니다.
고사리 같은 손을 쥐고 함께 올라갑니다.
"하나, 둘, 셋, 넷...." 셈을 합니다.
지헌이도
"하아, 드을, 세에..." 이상한 발음으로 셈을 합니다.
내가 멈추면 탁-하고 쳐다봅니다.
다시 "여덟, 아홉......" 하면
지헌이도 "여허, 아호..." 이상한 발음으로 다시 합니다.

자기 집처럼 놀이기구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장난감이었습니다.
사소한 것을 가지고도 창의적으로 놀고 있는데
깔깔 소리가 떠나지 않는 행복한 아이입니다, 지헌이는!

떠나기 전 날 밤.
지헌이는 잠이 들었고
아내와 아들, 며느리와 이별의 밤을 맞고 있었습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 이번에 지헌이에게 점수 엄청 땄다.
지헌이가 이렇게 나를 잘 따를지 몰랐다.
기도 많이 했지.
'하나님, 지헌이가 나를 좋아하게 해주세요!'
연애 때도 이런 기도 안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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