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에 딸애가 아프가니스탄에 갔습니다.
아프간 국가 인권 위원회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게 되어서 떠난 것입니다.
위험한 나라, 비자 받기도 쉽지 않은 나라가 되어서 걱정도 되었지만
이렇게 어려운 나라에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당당하게 떠나는 딸애를 보고 저으기 마음을 놓았습니다.
두바이를 거쳐 카불에 도착한 딸애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제 옆 거리에서 자살 폭탄이 터졌고
그래서 집과 사무실 외에는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외로 아프간의 음식은 맛이 있고
그래서 살이 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조금씩 적응을 하는 딸애를 보고 마음을 놓기로 했습니다.
걱정해야 소용도 없고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처음 들어본 것이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미국은 1980년에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보이콧 했고
그 보복으로 소련은 1984년에 열렸던 LA 올림픽을 보이콧 했습니다.
두 번의 반쪽 올림픽을 치룬후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온전한 올림픽을 치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처음 들었던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이었는데
잠시 잊어버렸다가
911이후 새롭게 대두되었습니다.
첨예하게 긴장이 계속되다가
한국 샘물 교회에서 선교를 갔고,
결국 두 명의 순교자를 남겨서 대서특필 되었던 나라입니다.
전에 그곳에서 근무하던 UN 전문요원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슬람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그 나라는
명예 살인이라는 것이 있답니다.
집안의 명예를 떨어뜨려면 가족끼리 죽이는 제도 말입니다.
16살 먹은 소녀가 동네의 한 청년을 사랑했습니다.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감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는 자꾸 불러오고 결국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의 엄마와 오빠는 그 소녀를 헛간으로 데려가
엄마가 소녀의 손을 뒤로 잡고
오빠가 면도칼로 배를 갈랐답니다.
뱃속에서 태아를 꺼내어 땅에 묻었는데
그때 태아는 울었다고 합니다.
이 소녀의 엄마와 오빠는
가마니 꿰매듯 얼기설기 대충 꿰매놓고
소녀를 방에 집어 던져놓았습니다.
이 소녀의 아버지가 출장갔다 집에 와보니까
딸애가 끙끙거리고 있습니다.
급히 보건소에 연락을 했고
UN 전문요원까지 동원되어
헬레콥터로 카불로 옮겨 목숨을 살려놓았답니다.
목숨은 살려 보호센테에 두었지만
어떤 장기가 없어졌는지 두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을 수도 없고 아니 믿을 수도 없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으며
아프간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딸애가 그 나라를 가니
더욱더 많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아프간은 내전 때문에 200만이 죽었습니다.
한국에서 625로 죽은 사람이 200만이었습니다.
소름끼치도록 맞아 떨어지는 숫자를 보고
아프간은 우리 한국에게 주어진
우리의 선교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품기로 했습니다.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그 어려운 땅에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품기로 했습니다.
꿈을 꿉니다.
그들과 우리가 함빡 웃음을 지으며
손을 맞잡고
따뜻하게 포옹을 하는
그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