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참으로 고난이 많았던 인생이었습니다. 얼마나 고난이 많았던지 "나만큼 고난 받은 인생이 있을까?" 할 만큼 고난이 많았습니다. "무었때문에 고난을 받았을까?"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복음을 위해서라면 얼마듣지 고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쓴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1.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예수님의 일생을 말할 때에는 "젖은 눈, 깨진 심장, 끓는 무릅" 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고난 받는 종이었습니다. 본래 그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당하지 못하는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비하면 자신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의 결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우리들의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보고 고난의 공동체라고 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구원을 확증해야 합니다. 이런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쪽에 서야 구원을 은혜로 그냥 받았지만, 하나님쪽에서는 엄청난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감사로 구원을 받자는 것입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고난을 받으셨음에도, 아직도 남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고 하는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그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그리스도는 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보고 "그리스도 남은 고난" 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의 육체에 채워야 하는데, 이것을 보고 선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기 위하여 우리는 단기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멕시코로 16명, 필라델피아로 6명, 그리고 이곳에서 Youth학생 16명이 파송을 받아 사역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내 차례!" 라는 마음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기 위하여 선교사들이 출발합니다. 선교사들이 할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저 전하는 일입니다. 믿고 아믿고는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역 할 때, 그 땅에는 그리스도의 계절이 올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