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실에서

마지막 잎새

작성자
담임목사
작성일
2018-11-23 16:53
조회
1779
창밖을 내려다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목양실에서 보이는 창밖은 몇 개 밖에 남지 않은 나뭇잎들입니다.
이미 단풍은 다 졌고
나무 밑동마다 수북이 쌓인 낙엽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 저리로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잎새를 바라보면서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 있는 허름한 아파트가 생각났습니다.
무명의 화가들이 모여 산다는 그 아파트 말입니다.

잔시도 여기에 살고 있었고,
오래 전에 걸린 폐렴 때문에 생명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잔시는 창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 넝쿨의 잎사귀를 세고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니, 잎사귀들이 떨어집니다.
하나, 둘 떨어져가다가
바람이 우수수 불면 나뭇잎도 우수수 떨어집니다.
떨어지는 잎새를 바라보면서 잔시는 생각합니다.
"저 잎사귀가 다 떨어지면 나도 죽을 것이다."

어느 날,
잎새가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 하나를 바라보면서,
"오늘밤 비바람이 몰려온다고 하는데,
그러면 저 마지막 남은 잎새도 떨어질 것이고,
나도 죽게 되겠지!"

같은 아파트에 술주정뱅이 늙은 화가가 있었습니다.
여태까지 한 번도 인정을 받지 못했던 화가였습니다.
이제 나이는 먹고,
자기 자신도 폐렴에 걸려 오늘, 내일 하고 있었습니다.

잔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찌 생명을 나뭇잎에 맡긴단 말인가?"
비바람이 몰아치는 그 날!
필사적으로 벽에다 잎새를 그렸습니다.
"내 평생에 다시없는 걸작을 그리겠다!"
죽을힘을 다해 잎새를 그렸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잔시는 아침이 오자 눈을 떴습니다.
창밖을 바라다봅니다.
당연히 떨어졌어야 하는 잎새가 그대로 있습니다.
'내일은 떨어지겠지'
내일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여기서 잔시는 삶의 의욕을 얻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잔시는 살아났지만
정작 늙은 화가는 폐렴으로 죽고 맙니다.
폐렴으로 죽어가는 잔시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도 폐렴에 걸려 오늘, 내일 하면서
마지막 입새를 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개 남은 않은 잎새들이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을 보며
"마지막 잎새"가 생각나는 것은
십자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낙엽처럼 떨어지면서
우리에게는 떨어지지 않은 마지막 잎새, 십자가!
십자가를 남긴 그리스도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너를 살릴 수 있다면 나는 죽어도 좋아!"
그리스도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은 점점 깊어가 겨울 속으로 흘러가고
낙엽 되어 떨어지는 나뭇잎들은
십자가 되어 마음속에 새겨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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