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실에서

첫 눈

작성자
담임목사
작성일
2017-12-08 06:13
조회
5076
눈이 내립니다.
2017년 첫 눈입니다.

모든 것을 중지했습니다.
내일 있을 평생 말씀 사역원 성경 공부 준비도
내일 있을 새벽 예배 설교 준비도
모두 중지했습니다.

커피를 탔습니다.
물을 뜨겁게 데피고
믹스 커피를 넣어서
커피를 탔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향기 짙은 커피를 마시면서,
내리는 눈을 보고 있습니다.
생각도 중지하고
눈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함박눈!
하나씩, 하나씩 추억에 잠깁니다.

오래 전,
군복을 입고
지금 아내가 된 여인과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습니다.
그때도 눈이 내렸고
저렇게 눈이 내렸고
정동 길을 걷는 우리는 아름다웠습니다.

이것보다 더 오래 전
기억에도 아득한 때,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어딘지 모르는 시골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도 눈이 내렸고
저렇게 눈이 내렸고
눈 쌓인 시골 길을 걸었던 기억.

필리핀과 LA에만 살아서
내리는 눈을 보지 못했던 딸,
애틀랜타 첫 해에 내리는 눈을 보고는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생전 처음 보는 눈의 향연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쉬워라!
이제 막 시작한 것 같았는데
벌써 눈발이 잦아들고 있습니다.

오후에 다시 온다는 일기 예보에 위안을 삼고
다시 일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잠시만이라도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고
옛 추억에 잠기게 한 눈을 뒤로하면서
겨울아, 고맙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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